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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찰 참배/충청도

충남 공주시 계룡산 갑사 - 대한불교 조계종

 

계룡산은 산을 사이에 두고 갑사와 동학사가 있다.

그 중 갑사부터.

계룡산 갑사, 혹은 계룡갑사라고 불리는 사찰.

화엄10대 사찰중 하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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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 의상(義相)이 당(唐)에 가서 지장사의 지엄(智儼)에게 『화엄경(華嚴經)』을 배우고 돌아와 창건한 10개의 절.

문무왕 16년(676)에 부석사(浮石寺)를 지어 화엄도량으로 삼고, 『화엄경』을 널리 펴기 위해

합천 가야산(伽倻山)에 해인사(海印寺), 보광사(普光寺), 경북 달성군 비슬산(琵瑟山)에 옥천사(玉泉寺), 부산 금정산(金井山)에 범어사(梵魚寺),

지리산(구례)에 화엄사(華嚴寺), 공주 계룡산(鷄龍山)에 갑사(甲寺), 서산 상왕산(象王山)에 보원사(普願寺),

경북 달성군에 미리사(美理寺 또는 美利寺), 청담사(淸潭寺)의 10개 절을 지었다고 하며 이를 화엄 10찰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미리사•청담사•보광사 대신, 비마라사(毘摩羅寺)•청계사(淸溪寺)•미현사를 꼽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엄십찰 [華嚴十刹]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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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대사는 갑사에서 출가하여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가 되어 항상 이절에서 주석하고 있었는데,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그 해 여름에 왜구가 청주지방까지 이르러 청주가 점거 당하자

이에 영규대사는 승려 700명을 엄격히 선발하여 승군을 일으켰으며

 청주지방의 승려 300명도 참여한 1000명의 승군으로 홀로 싸웠다.

8월에 영규대사의 승군이 청주를 쳐들어가자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의병장 조헌과 합세하여

왜병과 싸워 청주를 되찿았다.

한편 금산에 있던 초토사 고경명 군대가 왜군에게 패전하여 왜적이 다시 창궐하고

전라도 지방으로 진격하려 하자 영규대사는 조헌과 함께 진격하여 곧바로 금산의 외곽에 진영을 갖추고 있을 때

왜병이 쳐들어와 조헌이 먼저 전사하였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와 의병들이 전의를 잃고는 의병장 조헌이 이미 죽고 적은 더욱 기승을 부리니

물러섬만 같지 못하다고 퇴각하자는 간청이 있었으나

오히려 영규대사는 그들에게 조금도 굽히지 않고 죽게 되면 죽는 것이거늘 어찌 홀로 살겠다고 하겠는가라고 크게 호통을 치고는

흐트러진 전력을 다시 가다듬어 사력을 다해 종일토록 싸웠으나 그 또한 전사하였다.

이로써 최후의 한 사람까지 왜병과 싸움으로써 왜군의 호남침공을 끝내 저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승병을 일으킨 것은 영규대사가 처음으로 그 뒤 전국 곳곳에서 승병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그의 충의를 포상하여 복국우세기허당일합대선사를 추증하고 당시의 뜻을 기리도록 갑사에 표충원을 세워 휴정과 유정,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셨다.

(공주시 겨룡면 유평리에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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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 567-3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

041-857-8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