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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찰 참배/경기도

석모도 낙가산 보문사 - 대한불교 조계종

석모도의 보문사에 다녀왔다.

거의 6,7년전에 다녀오고.. 얼마만인지.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외포리 선착장이 없어져서 불편했다.

선착장의 위치가 바뀌었다.

그리고 17년 7월부터는 강화도에서 석모도로 다리가 놓여서 앞으로는 배를 타지 않고 다리로 다니면 된다고 한다.

이제 석모도가 석모리가 될지도?

 

 

 

 

 

 

신기한 코끼리.

코끼리 안에 코끼리가 또 있다.

 

절 아래 있는 기념품 가게도 구경하고...

 

 

 

 

2012년에 다녀왔던가.. 그때만 해도 나한들은 아무도 없었는데.

이것이 내가 12년에 다녀와서 올린 사진이다.

나무가 있던 자리에 지금은 부처님이 앉아계신다.

 

 

 

 

 

 

 

 

 

 

 

 

 

 

 

 

 

 

참... 좋아졌다.

 계단으로 슬슬 올라가면 되고, 가는 길에 용도 구경하고 소원지도 쓰고 자판기 음료수도 마시고 앉아서 쉬기도 하고...

 

 

 

내려다본 풍경.

계단이 얼마나 이쁘고 편리하게 놓였는지.

내가 12년에 찍는 사진과 비교를 해보면...

 

저렇게 좁은 길을 외줄을 잡고 부들부들 다녀왔었는데...

 

 

 

 

변한 곳도 있고, 변하지 않은 곳도 있고.

그래도 오랜만에 가보니 참으로 좋았던 보문사.

다음번에는 배 안타고 그냥 쭈욱 달려올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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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4년 4월이었다. 삼산면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다에 그물을 던졌더니 마치 인형처럼 생긴 돌덩이 22개가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건져 올린 돌덩이를 바다에 던져 버리기를 두 차례나 하였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책망하면서 내일 다시 한 번 건져 올려 명산에 잘 모셔 달라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어부는 다음날 22개의 돌을 꿈속에서처럼 건져올렸고,

지금의 석굴 부근에 옮겨놓았는데 갑자기 돌이 무거워져 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해서 이곳에 단을 만들어 모시게 되었고, 이것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7호인 오늘날의 석굴이다.
그 후 수백 년간의 내력은 거의 알 수가 없다.

다만 『보문사권선문』에 의해 조선 순조 12년(1812)에 중창한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더 분명한 기록은 고종 4년(1867) "경산대사가 석굴 안에 처마를 이어 나한각을 건조했다.

동왕 30년(1893) 4월에는 왕후 민씨의 전교로써 요사와 객실을 중건했다"고 전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석모도 보문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7 - 경기남부와 남한강, 초판 1996., 15쇄 2012., 돌베개)

 

 

 

 

인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

 

032-933-8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