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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해보는 고민

울다.


[2008년 7월 18일]

어제 자기 전에 고스트앤 크라임을 봤다.
마침 앨리슨이 청력장애인의 꿈을 꾸고 똑같이 청력을 잃어버리는 내용이 나왔다.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보고 참 마음 아팠는데.

청력검사를 했다.
처음 오시는 할머님.
생글생글 웃으시는데 뭔가 하실 말씀이 많으신 듯 했다.
대개 청력검사를 할땐 고무된 귀가 완전 밀폐 되는 헤드셋을 씌운다.
그래서 평소엔 안들렸었는데 검사실에 들어오면 소리가 들린다고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다.
근데...이 어머님. 전혀 안들리신단다.
신호음을 넣어도 전혀....
검사중에 갑자기 말씀하신다.
아버지 어머니가 일본인이셨다고.
네살때 전쟁이 났는데 아빠가 살려주려고 물속에 머리까지 꾸욱 눌러서 넣었다고.
근데 뭐가 꽝~ 하고는 소리가 안들린다고.
엄마랑 언니랑 동생이랑 넷이 안들린다고.
양쪽 귀에서 모두 노란 물이 나오는데
어떤때에는 갈색도 나온다고...
부산에 큰 병원이랑 서울에 큰 병원 갔는데 못고친다고.
절대 못고친다고 했다고.
마흔 둘에 혼자가 되셔서 육남매를 머리에 뭔가 이고 다니면서 키우셨다고.
큰딸은 뭐하고 살고 둘째는 뭐하고 살고..오늘 온 아들이 넷째이자 장남이라고.
보청기 해준다고 장남이 나 데리고 왔다면서 자랑스러워하신다.
참....힘들게 사셨는데...그걸 웃으면서 말씀하시다니.
부모님이 일본인이셨고 네살까지만 소리를 들으셔서일까.
-안드끼니다. 못고치니다.
약간 말투는 이상했지만.
말씀 하시면서 계속 웃으셨지다.
그치만울듯 말듯 웃으셨기 때문에..
결국 듣고 있던 내가 울어버렸다.
난 한번 눈물보가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줄줄 흘러내린다.
유리 칸막이 건너에서 내가 소매로 계속 눈물 훔치는 것을 보시면서
눈물이 그렁한 웃음으로
-하나도 안듣기니다. 절대로 못고치니다. 그때부터 하나도 안듣기니다. 못고치니다.
그 말씀만 하시는데 정말...

지금 난 난청센터에서 근무를 하고 있고
내가 아는 언니 부부가 모두 장애자다.
언니는 신체적인 장애. 아저씨는 지체장애.
장애자는 내게 낯설지 않다.
장애자들이라고 별다른 것 없다. 단지 좀 불편할 뿐.
그런데 장애인들이 받는 괄시와 설움이란 정말.
사회복지보다 더 끔찍한 것은 사람들의 냉대 아닐까.

이십대 초반에 미용을 배워서 미용 봉사를 간 적이 있다.
그때 TV에도 나오고 유명하다는 장애인을 만난 적이 있다.
팔 다리가 없다.
그때 꾸물꾸물 어깨로 기어오던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지 난 꼼짝도 못하고 얼어있었다.
반갑다고 온 것이었지만, 처음 보는 나로서는 얼마나 무섭고 놀라웠던지.
그때 그 분께 활짝 웃어주지 못해서,
평범하게 대해주지 못해서
지금 이렇게 많은 장애인들을 만나게 되고 마음이 아픈걸까.

결국 그 어머님은 청신경이 모두 죽어있어서
보청기를 못하고 가셨다.
마지막 희망마저 꺾인 것은 아닌지...
배웅하면서 또다시 목이 메어서 인사를 못하고
허리만 푸욱 숙여 인사하면서 얼굴을 가렸다.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너무너무.